페레올 주교와 김 안드레아 신부는 상하이에서 한국으로 가기위한 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교회 관할권에 관련된 분쟁들이 잦았습니다. 1831년에 파리 외방전교회는 한국으로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당시 중국 선양지부는 베이징의 포르투갈 선교사들 아래에 있었습니다. 포르투갈 선교사들도 한국을 눈독들이고 있었기에, 페레올 주교는 선양에서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한국에 세력을 먼저 퍼뜨려 관할권을 가져오려는 선교사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을 떠나 김대건 신부는 제주도 용수리에 잠시 기항하여 한반도로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제주 용수리에는 신부님이 탔던 배인 라파엘호를 복원한 기념 모형이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