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보클뤼즈 지방에 위치한 퀴퀴롱은 장 조셉 페레올 선교사와 그의 생애를 책으로 펴낸 르네 볼로가 태어난 도시입니다. 마을에는 한국으로 떠난 프랑스 선교사들을 기리는 의미로 “장 조셉 페레올”로 이름이 지어진 장소도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 장 조셉 페레올 주교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것입니다.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마을 주민들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몇몇 이 시골마을에 방문하기도 하는 것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 주교님에 대한 관심은 성당에서 그의 초상화가 발견된 이후로 다시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린 쿠쿠롱 성당의 제의실에서 중국인이 그린 초상화를 발견했습니다. 초상화 속 인물이 주교님임을 알고난 후, 그 초상화를 다시 걸어놓게 되었습니다. 그는 조국에서 외국인과 같은 취급을 받았고 그랬기 때문에 그는 저를 더욱 더 매료시켰습니다.” René Volot
F페레올 주교는 마카오에 6주간 머물렀습니다. 그는 3명의 한국인 신학생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는 젊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도 있었습니다. 페레올 주교는 영국과 청나라 간의 아편전쟁(1839-1842)이 막 시작한 시점 중국에 도착하게 됩니다. 당시에 외국인은 중국 영토내에 적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페레올 주교가 도착함과 동시에 자신과 통역 역할을 하던 김대건 신부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고 한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중국 북쪽으로 가기 위한 길을 찾았습니다.
1663년에 설립된 파리 외방전교회는 천주교가 아직 퍼지지 않은 국가, 특히 아시아 대륙에 복음을 전하려는 목표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1844년경에는 선교자들의 출항을 기념하는 경당이 건설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시기에 아시아로 향한 선교사들은 10여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도록 직접 선교하지 않고 해당 지역의 선교를 관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실제로 전도를 하는 사람은 해당 지역의 현지 천주교도들이었습니다.
2003년 한국은 장 폴 2세 교황이 시성한 한국인 순교자들을 기리는 비석을 제작했습니다. 이 비석은 하늘을 상징하는 용들이 태양을 입에 물고있고 확고함과 땅을 상징하는 거북이의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프 베라드 : 해외로 떠나고 싶어하는 망명자들을 도우면서 생 에티엔 교구에서 10년간 사제로 일했습니다. 그는 파리 외방전교회를 2004년에 알게된 후, 처음으로 한국에서 6개월간 일할 수 있었고 후에는 한국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는 서울에서 선교자들의 신학을 가르치며 프랑스어권 천주교도들의 신앙 생활을 돕고있습니다. 그 외에도 그는 결핵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을 돕는 유진 벨 재단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