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육로를 통하여 한국으로 향하는 국경을 넘으셨습니다.
당시에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고 매년 베이징에 조공을 바쳤습니다. 양국은 당시에 선물을 교환하기도 하였으며, 중국은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의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가 가장 심했을 때, 신도들은 안성 근처의 마을인 미리내로 도피하였습니다. 1991년에 이 장소는 103명의 한국인 순교자들을 기리는 성지순례의 장소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이 한국인 순교자들은 1984년 장 폴 2세 교황이 시성하였습니다. 이 경당은 첫 한국인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골이 모셔져 있고 그 옆에 장 조셉 페레올 주교의 유골이 함께 모셔졌습니다.
1967년 한국인 순교자들을 기리며 만들어진 절두산 순교성지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는 박물관, 교회, 십자가의 길, 조형물들 그리고 26 명의 순교자들의 무덤과 추도상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한강을 내려보는 위치에 1866년 병인박해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기념비가 위치해있습니다.
반가톨릭 정책이 절정에 이르던 19세기 후반에 수천명의 신도들이 처형당하여, 목이 떨어져나간다는 뜻의 “절두”가 산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한국 선교를 위한 길을 알아보기 위해 지리 공부를 하던 중, 한국인 관헌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당고개순교성지는 용산전자상가 앞에있는 당고개라는 작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0 명의 신도들이 1839년 이 곳에서 처형당했고 그 중 9 명의 신도가 성인으로 추대되었습니다. 또한, 이 성지에서는 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명동성당은 한국의 중요한 역사적 장소임과 동시에 종교적인 장소입니다. 오랜 기간동안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였으며 한국 정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장소입니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고안하고 중국인 석공들이 제작한 명동성당은 한국에 지어진 첫 번째 고딕 양식의 성당 건물입니다.